클래식 음악을 오래 듣다 보면 작곡가의 삶이 음악에 배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불과 31세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작곡가인데, 실제 나이로 따지면 모차르트보다도 더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엄청 가난했고 비참했으며 인기도 없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160cm 조금 넘는 키에 약간 통통하고 동그란 안경을 쓴 외모였다고 합니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없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 사람이 남긴 음악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의 최초로 독일 예술가곡을 집대성한 작곡가로, 슈베르트 덕분에 후에 슈만,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이 예술가곡이라는 장르를 이어받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 |
가곡의 왕이 남긴 피아노곡
가곡의 왕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피아노곡을 적게 작곡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아노곡도 무수히 많이 남겼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입니다. 슈베르트는 죽기 직전인 1827년경 총 8곡의 즉흥곡을 작곡했고, 4곡씩 나눠서 출판됐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D.899의 네 곡 중 세 번째입니다.
즉흥곡이란 자유롭고 즉흥적인 악상을 소품 형식으로 담아낸 곡입니다. 즉흥곡은 19세기 초에 발달한 장르인데, 프란츠 슈베르트가 시초는 아닙니다. 슈베르트 이전에 다른 작곡가가 이 장르를 만들고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즉흥곡을 완성하고 유행시킨 최초의 작곡가는 슈베르트입니다.
쇼팽의 즉흥곡과 다른 점
쇼팽과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엄연히 다릅니다. 처음 두 곡을 비교해서 들었을 때 솔직히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는데, 여러 번 듣다 보니 확실히 달라요. 쇼팽의 즉흥곡이 화려하고 테크닉적이라면, 슈베르트의 즉흥곡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완성한 즉흥곡이라는 장르는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고, 그 덕분에 당시 다른 유럽 작곡가들도 즉흥곡이라는 장르에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슈베르트는 즉흥곡에 드문드문 빠른 템포를 넣기도 했지만, 대부분 차분하고 느린 템포로 연주됩니다. 튀지도 않지만 심심하지도 않은 대중적이고 반복적인 선율이 많습니다. 단순한 구조와 테크닉 때문에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도 슈베르트 즉흥곡을 피아노 콩쿨에서 많이 연주합니다. 그런데 또 슈베르트의 잔잔함과 깊이, 노련함도 묻어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도 즐겨 연주하곤 합니다. 이 이중성이 슈베르트 즉흥곡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선율을 끝까지 끌고 가는 방식
이 곡은 느린 템포의 선율을 끝까지 끌고 가는 작곡 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피아노는 타현악기이지만 타악기에 더 가깝습니다. 해머로 쳐서 울림을 내는데 현악기보다 울림이 빨리 사라집니다. 페달로 버티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죠. 슈베르트는 선율에 맞는 화음을 계속 울려서 선율이 넘겨지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치면서 이 부분을 연습할 때 화음의 울림이 이어지는 느낌이 참 독특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화음이 변할 때 슈베르트가 얼마나 단순하고 멋지게 넘어가는지, 이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의 울림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단음 하나만으로 깔끔하게 넘어가는 부분에서 사람들이 이 음악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수비토 — 갑자기 터지는 순간
'수비토(subito)'는 이탈리아어로 갑자기라는 의미입니다. '다이내믹이 매우 크게 나왔다가, 갑자기 작게 연주하라'는 의미입니다. 과시적이진 않지만, 피아노를 갑자기 크게 연주함으로써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거기서 사람들이 매력을 느낍니다.
25번째 마디부터는 이 곡 전체 길이로 봤을 때 중간에서 약간 앞부분입니다. 앞부분은 잔잔하고 몽롱한 느낌의 멜로디가 아니라 조금 강한 느낌입니다. 슈베르트가 나타내고 싶었던 격정적인 의미를 담았을 거예요. 가르쳐본 경험상 이 부분을 수비토로 포르테를 하라고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처음엔 어색해합니다. 포르테는 세게 친다는 의미인데, 물리적으로 세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앞부분이 잔잔하니 어느 정도만 표현해도 굉장히 극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엔 잘 모르거든요.
이끔음과 재현부 — 슈베르트의 마무리 방식
화음이 바뀔 때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음을 이끔음이라고 합니다. 슈베르트는 이끔음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길어도 두 음으로 연결합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고전적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슈베르트를 고전적인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지만 낭만적인 고전주의 작곡가라고 합니다.
마지막 재현부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잠깐 쉬어가는 늘임표로 연결하여 고요함을 없앴습니다. 맨 처음 부분이 재현되기 전에 분위기가 다른 음악의 음을 늘임표로 늘이면서 완전히 끝내고, 다시 재현하는 것입니다. 깔끔하게 넘어가는 것이죠. 재현부에서는 앞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선율이 나옵니다. 이 새로운 선율 덕분에 긴 곡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조성이 살짝 바뀌다가 아주 조용하게 끝납니다. 이것이 슈베르트 음악만의 특징입니다. 처음 이 곡의 마지막을 들었을 때 이렇게 조용하게 끝날 수 있구나 싶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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